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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KON CORPORATION | NIKON D80 | Aperture Priority | Multi-Segment | Auto W/B | 1/100sec | F22 | F4 | -0.33EV | 24mm | 35mm equiv 36mm | ISO-320 | No Flash | 2010:05:18 23:08:12

<epilogue>

수하물 검사를 위해 대기줄에 서서 기다리던 중 이상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한국에서 카타르로 이동할 때는 분명 이런 소지품 검사실에 들어오기 전에 커다란 수하물은 이미 택을 붙여서 비행기 수하물 칸에 따로 실어 보내는 일을 했던 것 같은데 아테네에서 카타르로 이동하려는 지금 이 순간에는 제 손에 들린 이 커다란 수하물은 도대체 무엇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뭐지? 뭐가 잘못된거지? 내가 뭘 빠트렸나?'

역시나 예상대로 검사를 수행하던 공항 직원들이 이상한 눈빛으로 저희 부부를 위아래로 훝어 보기 시작합니다. 커다란 캐리어가 물품 검사 레일을 통과하자 엑스레이로 비춰 본듯한 모니터 화면에는 캐리어 안 물건들이 스캔이 되었고 공항 직원이 캐리어를 지퍼를 열고는 고압적인 말투로 매우 부정적인 말투의 단어들을 쏟아 냅니다.

캐리어 안쪽에는 이번 여행 전 아내가 큰 맘먹고 사준 고가의 스킨이 있었고 이러한 액체를 기내에 들고 탈 수 없는 규칙으로 인해 직원은 강한 어투로 무언가 계속 물어 봅니다.

이미 머리 속은 혼미한 상태로 멍한 채 서 있는 제 귀가에는 영어 단어가 맴돌고 있었고.. 대충 알아들은 몇단어로 추측해 보건대 이걸 가져가려면 따로 수하물 체크를 해서 비행기 수하물 칸에 실을 수 있도록 별도로 처리를 해야 한다며 다시 돌아가서 처리하고 오라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이제 탑승 시간이 20분 남짓.. 상당히 먼 거리를 걸어온 지라 직감적으로 다시 돌아가서 처리하기에는 시간이 너무나 부족한 것을 알게 되었고 결국 고가의 스킨은 포기해야만 하는 결정을 내려야만 했습니다.

아내가 저를 탓하는 원성의 눈빛과 감정이 가슴에 닿으며 한편으로는 대기시간 중 쇼핑을 하지 말고 나와 같이 준비를 제대로 했는지 체크 하지 않았던 아내가 원망스러웠습니다.

그렇게 대기실로 이동한 저희는 당혹감과 허탈함에 심한 피로감이 몰려왔고 뒤늦게 이동한 대기실은 이미 여행객들로 가득차 빈 의자는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미안한 감정이 더 컸던 저로서는 빈 자리를 찾아 여기 저기 찾아다니기 시작했고 찾지 못한 채 돌아와보니 아내는 맨 바닥에 널부러져 앉아 버렸습니다. 저도 지쳤던 지라 같이 바닥에 앉았고 아내는 화가 삭히지 않은지 같이 자리에 앉기 싫어하며 자리를 떴고 그렇게 옥신각신 하던중 마침 빈 자리가 나서 함께 앉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말없이 앉아 있다가 혹시 모를 또다른 실수가 있을까 두려워 준비된 티켓을 꺼내어 탑승 게이트에 있는 직원에게 이 티켓에 탑승 게이트가 이 곳이냐? 라고 물었습니다.

원했던 답보다 길게 대답해준 직원에게 간단한 감사 인사를 하고 이곳 게이트가 확실하다는 것을 아내에게 말해주었습니다. 묵묵부답으로 그저 듣기만 하고 있는 아내에게 아쉬움을 토로하고 아침부터 있었던 사건들을 다시금 되새겨 보며 우리가 싸워서 결국 수하물 체크를 하지 못한게 가장 큰 문제였음을 인지하고는 아내에게 "내 실수다. 내가 느낌이 조금 이상해서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여권 검사하는 곳을 통과한 후에 수하물 보내는 곳이 나올 줄 알았는데 잘못 생각했나 보다." 라고.. 아내를 위로하며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방송으로 많이 듣던 이름이 흘러 나옵니다. 얼핏 아내와 제 이름을 부르는 것 같았지만 피로가 겹쳐있는 상태라 설마 우리를 부른거겠어 하는 심정으로 가만 앉아 있었습니다.

저희가 타고갈 탑승 게이트가 열렸고 사람들이 줄을 서서 들어가기 시작합니다. 지쳐있던 저희는 제일 마지막에 타자고 마음 먹고 계속 앉아 있었고, 줄이 꽤나 줄어들 무렵 방송에서 다시 아까 들었던 저희의 이름이 나옵니다. 설마했던 마음이 우리 부르는건가? 하는 마음을 먹던 중 근처에 있던 다른 한국인 여행객이 "두분 부르는거 같은데요.." 라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공항 직원이 저희에게 다가와서는 티켓을 보자고 합니다.

티켓을 보여주자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저희에게 서둘러 게이트로 들어가라고 합니다.

알고보니 전날밤에 인터넷 탑승 수속을 처리한 게 카타르 항공에서 한국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아테네에서 카타르로 가는 수속 처리를 한 것이었고 게이트 왼쪽 입구로 남들보다 대기시간 없이 빨리 들어갈 수 있는 것을 아무 생각없이 대기하고 있으니 미리 인터넷 수속을 밟고 나타나지 않는 저희를 방송으로 계속 찾았던 것입니다.

부리나케 게이트로 이동해서 티켓을 보여주고 들어가려고 하자 직원이 앞을 막습니다. 왼쪽으로 들어가라고 합니다. 같은 통로인데 인터넷 탑승 수속은 왼쪽이라는 뜻인거 같았습니다. 이게 무슨 망신인지.. 대기실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저희를 바라보는 것만 같고 쥐구멍에 들어가고 싶었습니다.

불행은 여기서 끝이길 바랬습니다.

하지만, 비행기에 오르자마자 커다란 캐리어가 문제였습니다. 비행기 짐칸에는 도저히 실을 수 없을 부피에 크기가 문제가 되어 사람들 지나갈 통로를 막아서자 승무원이 다가와서는 조금 더 큰 짐칸이 있는지 다른 짐칸에 넣어보려고 하지만 역시나 큰 캐리어는 들어갈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승무원들이 하나둘 모여들고 저를 입구쪽으로 나오라고 합니다. '설마 탑승못하게 하려는건가?' 하는 불안감이 엄습해 오고 조종사까지 나와서는 한참을 대화합니다. 한 5분정도였던 시간 같은데 한 5년은 지난것처럼 등골이 오싹하고 얼굴에는 비오듯 땀이 쏟아져 내립니다.

승무원 중 한명이 어딘가로 무전을 치자 남자 승무원 한명이 와서는 저희 캐리어에 택을 달고 캐리어를 들고 갔습니다. 택에는 아테네와 경유지인 카타르 그리고 서울이 기록되어 있어서 수하물에 이동 경로를 표시한 듯 보였습니다.

택을 우두커니 바라보면서 앉아있으니 문득 캐리아 안에 있던 인쇄한 티켓이 떠올랐습니다.

"헉, 티켓!"

아테네에서 부터 늘 챙겨 가지고 다니던 여권 가방으로 사용하던 작은 가방 속에 함께 넣어두었다가 필요하면 꺼내서 처리하던 여행 스케줄과 비행기 티켓이 아테네 -> 카타르 항공 티켓만 있고 카타르 -> 서울 티켓은 안보이는 것입니다.

한참을 모든 가방을 뒤져봐도 보이지 않았고 기억 속에 전날 아침에 있었던 사건들이 스쳐 갔습니다. 호텔에서 인쇄 문제로 골머리 썩이며 시간에 쫓겨서 인쇄한 인터넷 탑승 수속이 완료된 티켓을 그만 캐리어 가방 앞쪽에 여권과 같이 넣어 놨던 것입니다. 나중에 빼서 챙겨 두려고 했던 것을 모두 잊어 버린 채...

아내와 저는 동시에 마주보고 이 상황을 어떻게 하지? 고민 하다 일단 대화로 표현하기 위한 단어들을 빠르게 조합해서는 승무원과 대화를 시도했습니다. 승무원이 이해를 하긴 한 것으로 보였지만 이미 수하물 칸으로 내려간 캐리어를 다시 찾아보는건 불가능 하다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그렇게 어이없는 상황이 머리속을 가득 채운 상태에서 자리에 와 앉아서는 아내의 얼굴을 바라볼 용기가 나질 않습니다. 고개를 앞으로 파묻고는 한참을 아무 말도 없이 고개도 들지 않고 내 자신을 반성했습니다.

'난 왜 이모양일까? 뭘 하나 준비를 해도 이렇게 허술할까? 잘하려고 하면 더 큰 사고를 칠까?'

별에별 생각들을 다 쏟아내면서 머리를 조아리고 있자 아내가 저의 이런 모습이 측은했던지 슬며시 팔짱을 낍니다. 눈물이 찔끔 나며 이런 못난 나를 위로해 주려는 아내가 고맙게 느껴지고 힘이 조금 나서는 기내식을 먹고 안정을 취했습니다.

몇시간이 더 흘러 카타르에 도착하자 저희는 발걸음을 빠르게 재촉하며 혹시 중간에 수하물이 이동하는 걸 확인해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으며 찾아보았지만 그런 방법은 없어 보였습니다.

정말이지 어이없고 무슨 불행이 이렇게 연속으로 터지나 싶을 정도로 황당하고 깊은 자괴감에 빠져 들어 버렸습니다.

카타르 공항 대기실 이곳 저곳을 수소문하며 티켓 분실.. 과 관련해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을 찾기 시작했고 안될 것 같던 티켓 재발급이 여러 단계를 거쳐 조회를 한 끝에 발급 받을 수 있었습니다.

마음 고생을 심하게 한 탓인지 아내와 저는 카타르에서 서울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거의 대화를 나누지 않았습니다.

김포공항에 도착하자 무거웠던 마음이 조금은 덜어졌고 집에 도착해서는 겪었던 일들을 쏟아내며 즐거운 추억인지 괴로운 추억인지 알 수 없는 기묘한 감정들이 이어졌습니다.

이렇게 2년이 더 흘러 보니 역시 여행은 고생을 해야 짙은 추억이 되서 더 오랜 시간이 흘러도 다시 꺼내서 볼 때 할 말이 많아집니다.

당시에는 힘들고 괴로웠어도 지금은 행복한 기억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the en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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