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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2/06 14:46
오랜만에 소개팅에 나간 정양은
말끔하게 생긴 남자를 보고
수십 년 만에 찾아온 횡재에 미소지었다.
다소곳하게 앉아서 고개를 옆으로 15도 각도를 기울이거나
간혹 고개를 까딱거려 맞장구를 쳐주고 있었는데
남자도 그런 그녀가 마음에 들었는지
비싸기로 유명한 훼밀리 레스토랑으로 안내했다.
그런데 그 남자, 거기서도 볶음밥을 시켜놓고 젓가락을 들더니,
잘게 잘라 한 면의 길이가 0.5cm 밖에 안 되는
고추와 당근들을 하나 하나씩 골라내서
냅킨 위에 주르륵 전시해놓는 것이 아닌가.
정양은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그래, 내 복에 무슨.'
하지만 남자의 식성은 대체로 까다롭지 않다.
회식을 하러가서 편식을 하면
당장 "사내자식이 가리긴"하는 주변의 질타가 쏟아지기 때문에
자기가 못 먹는 음식이 있다는 걸,
공식적인 자리에선 밝히지 않는다.
그래서 생선냄새만 맡으면 속이 울렁거리는 남자도
말없이 횟집에 따라가, 회를 제외한 다른 것만 먹는다.
그런데 남자의 식성이 딱 한번 까다로워질 때가 있다.
그건, 어릴 때 어머니나 할머니가 해주시던 음식을
고향집이 아닌 곳, 즉 식당이나
아내가 차린 밥상에서 먹게 되었을 때이다.
그 때 그들은 공통적으로 이런 말을 한다.
"우리 집에선 이렇게 안 해."
남자의 식성에는 기본적으로 회귀본능이 있다.
그는 밥상에 앉으면 바로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던
고향집으로 돌아가며,
그 때의 향수를 간직하기 위해 밥을 먹으면서도 분석하고 비평한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지방색이 진한 특정 요리들이 살아남는 것이다.
재밌는건 남자들은 동물의 세계에서는 반드시 지켜지고 있는 약육강식에 따른 발빠른 행보를 잘 찾아내서 행동으로 옮긴다는 것이다.
사회적 지위 앞에서는 말없이 따라야만 하는 그들도 자기가 가장 최고의 자리이거나 자신의 권위를 내세울 수 있는 자리에서는 주저없이 자기 주장을 내뱉게 된다는 것이다.
식당에선 손님이 왕이 되고, 아내 앞에서는 하늘같은 남편이 되는 것 처럼 말이다.
이러한 남자들을 비난하기 보다는 어찌보면 당연하고도 현명한 선택이라고 보는게 옳지 않을까 싶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분위기 파악 못하고 자기 주장도 내세우지 못하는 바보들 보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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