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인생 참 오묘하다. 엊그제 까지만해도 다음주 휴가계획을 쫘악 잡아놓고는 어디로 갈지를 고민하면서 즐거운 상상에 빠져 있었건만 하루 아침에 달라지고 취소될 위기에 처해진 일정 때문에 심하게 의기소침하게 만든다. 정말이지 한치 앞이 어떻게 달라질지 모르는 세상을 살면서 계획이 무슨 소용이 있는것인지 모르겠다. 대체로 업무나 가정사나 마찬가지인 듯 싶다. 주간계획, 월간계획 모두 잡아놔도 결국 그날 그날에 새로운 이슈에 따라 일정들이 뒤엉킨다. 집안일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좋은 계획도 어느 순간에 가족 중 누군가에 의해서 틀어진 계획은 모든 계획을 수포로 돌아가게 만들만큼 터무니없이 예기치 않은 곳에서부터 발생하게 된다. 그러고보면 예기치 않은 일은 어릴적 소풍 날에도 있어왔다. 몇주전부터 기대하고 소풍날만 기다리던 어린시절.. 갑자기 새벽부터 내리기 시작하는 비는 소풍 도시락 대신 점심 도시락으로 바뀌게 되버리는 일을 만들어 버리곤 했던 것처럼 말이다. 어찌보면,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다는 것은 좋은면으로도 충분히 작용할 수 있음에도 사람은 누구나 좋은일보다 나쁜일에 대한 경험을 더욱 자극적으로 느끼게 되고 그로인한 경험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왜 이렇게 꼬이냐?' 라는 자조섞인 되뇌임만 하게 되는가 보다. 좋은일은 복권 당첨처럼 커다란 행운이 아니고서는 그 느낌이 전달되지 않는 반면 나쁜일은 아주 사소한 것에서도 불만이 쏟아지는 것처럼... 오늘 내 휴가는.... 죽었다.
|
|
|
|
* 이 글의 트랙백 주소 :: http://nfeel.co.kr/tt/trackback/685 [Copy] |
|
|
|
그들이 네티즌이고 그들이 블로거가 되고 카페의 주인이되며 모임을 주관하며 팀을 조직하기도 한다.
무엇을 바란다는건 무리가 아닐까?
그저 인간 세상이 그런것처럼 온라인도 이런류의 사람도 있고 저런류의 사람도 있는 것이다.
비판하면 무엇할 것이냐.. 결국 드러내지 못한 채 온통 휘갈겨진 글자 위로 지끈지끈 아파오는 정신만이 맴돌게 될 뿐인걸...
자신을 표현하고 자신을 내세우고 싶어하고 자신을 우러러보게 만들고 싶은건 기본적인 인간심리이기 때문이다.
정상에 서고 싶어하고 군림하고 싶어하고 쟁취하고 싶은 것도 인간이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비둘기라고 믿는 까치에게... "넌 까치야" 라고 그렇게 말해주고 싶은가?
|
|
|
|
* 이 글의 트랙백 주소 :: http://nfeel.co.kr/tt/trackback/668 [Copy] |
|
|
|
한때 약 7개월간 내 블로그는 회사 방화벽에 의해서 접속 차단 리스트에 올라가 있었다.
딱히 그럴만한 이유가 없었던것 같은데 예상으로는 업무시간중에 접속한 수많은 url 중에서 불필요한 것들은 모조리 차단시켰던 듯 싶다. 그때 이후인지 블로그에 소원했었던 상황에 기름을 부어버리는 격이 되버렸다.
어째껀 지금은 이제 자유롭게 사용이 가능하게 되었지만 이게 언제 다시 막혀버릴지 모를 일이다.
블로그를 시작하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회사를 두차례 이직했다. 블로그 초기에 회사는 나름대로 여유도 충분했었고 시간도 넉넉하리만치 주어졌기 때문에 그만큼 충분히 글을 올리는데에도 자유로왔다.
그후에 이직한 회사는 출장이 잦았고 지방에서 보내는 시간도 많았던 지라 블로그를 돌본다는게 말처럼 쉽지 않았던 때다. 여유가 그만큼 부족했던 만큼 블로그는 내 생활에 일부에서 멀어지게 되었던것 같다.
그리고 지금도 그다지 여유롭지만은 않지만 나름대로 정말 빠르게 적응해 가고 있다. 다만 아쉬운 건 글을 쓸때마다 수시로 주변을 살피고 지나가는 상사는 없나 하는 눈치를 보게된다.
한편으로는 이렇게까지 조바심내면서 해야하나 하는 생각도 들지만 역시나 다시 시작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은 그래도 예전만큼의 글쓰기 실력이 나오질 않는다. 그만큼 녹이 슬었나보다. 차츰 나아지겠거니 생각하면서...
살아가는게 힘들면 누군가에게 털어 놓고 싶은 말이 있다. 블로그는 내게 그런 존재다.
|
|
|
|
* 이 글의 트랙백 주소 :: http://nfeel.co.kr/tt/trackback/666 [Copy] |
|
|
|
다람쥐 2마리가 우리집으로 이사를 왔다. 철장에 갇혀있는 다람쥐가 크게 내 인생과 다르게 느껴지지 않는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과 늘 똑같은 사람들과 똑같은 일들이 하루 하루 지나간다.
먹이를 주는 주인의 눈치를 살피기도 하고 주인이 자리를 비우기라도 할라치면 내 세상처럼 들뜨게 되어 시키지도 않은 채바퀴를 마구 돌게 되는.. 그런 인생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사람과 사람이 엮이는 사회생활이지만.... 그래서 더더욱 사람을 극복해야 하지만.... 그래도 가장 힘든게 사람이다.
아무 감정없이 살아가면 그뿐인데.. 늘 마음가짐처럼 그들을 대하기 힘들다. 내 마음가짐은 하나인데 내가 겪어야 하는 사람은 수도없이 많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제각기 각자가 원하는 삶의 방식이란게 있을 것이고 그들이 추구하는 이상이라는 것이 있을터인데 난 그들을 보통의 삶에 끼워 맞추려고 애를 쓴다. 그저 관여하지 않으면 될 것인데 내 지나친 욕심이 쓸모없는 논쟁을 낳게 되고 나 스스로를 다람쥐 인생으로 만들어 버리고 만다.
이제 조금은 내 상식의 폭이 넓어진 듯 싶다. 행복이란거 왜 많은 책이나 역사적 인물들이 마음가짐에 따른다고 말을 하였는지를 말이다. 단지, 이론적이고 도덕적인 토대에서 비롯된 이해를 넘어서 실제 경험을 통해서 얻어진 교훈이다. 어찌보면 지극히 이기적인 사고방식으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남에게 해를 가하지 않고 자기와 자기가족을 위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그들을 욕할 자격은 없다. 누구하나 자기 자신에게 오는 해를 좋아할 자는 없고 자기 손해를 보면서까지 남을 위하는 언행을 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꽤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자신을 낮추거나 자신의 손해를 감수하면서 살아가는 것인냥 생각하거나 표현을 하지만 실제로 그들 대다수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거나 환경적 요인, 종교적 요인, 사회직위에 따른 요인 등등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이유들로 인해서 불가피하게 만들어진 모습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들을 비난하는 행위는 이제 멈춰야 할 것 같다. 그것이 그들의 인생을 살아가는 방식인 것이고 설사 그것이 틀리거나 다르다 할지라도 그것은 그들 스스로가 깨우치거나 넘어서야할 그들만의 고행인 것이기 때문이다.
다람쥐 인생... 비난하기 보다 스스로 즐길줄 아는 자세가 필요한 시점이다.
|
|
|
|
* 이 글의 트랙백 주소 :: http://nfeel.co.kr/tt/trackback/661 [Copy] |
|
|
|
이번 검찰의 황박사파문 조사 결과 발표를 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의문투성이로 가득 차 있다. 일방적으로 황우석 박사의 문제점만을 집중 부각시키려 몸부림을 치고 있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첫째, 너무나 근거가 많은 미국 새튼의 특허강탈 음모에 대해서는 아예 발표도 하지 않았다.
이번 사건의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는데 검찰은 민족의 이익을 지키려는 어떤 노력을 했는지 스스로 되돌아봐야 한다. 새튼의 답장만 기다릴 것이 아니라 외교부에 적어도 새튼에 대한 강제구인요청을 해봤어야 하는 것 아닌가. 1달 전쯤 이복재 기자가 외교부에 확인해보니 그때까지 검찰은 전혀 그런 요청을 하지 않고 있었다는 사실이 확인 되었다.
새튼이 황박사의 특허를 강탈하려는 의도가 너무 많았음에도 서울대 조사위와 검찰은 이에 대해 일언반구도 없다.
새튼이 특허를 강탈 관련 진실을 밝히는 조사를 하는 것 자체가 황박사의 기술 인정하는 것으로 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새튼의 특허강탈 음모를 밝히는 것은 가장 공정한 황우석 박사 기술의 진실을 밝히는 일로 된다. 검찰은 이에 대해 최선을 다했다고 역사와 민족 앞에 떳떳하게 말할 수 있는가 묻고 싶다.
둘째, 논문조작은 결국 김선종 연구원이 주도한 것으로 검찰 스스로도 인정을 하면서 이인규 3차장 검사는 논문조작의 총책임이 황우석 박사에게 있는 것으로 발표하고 있다. 이는 심각한 편파적 태도이다.
황우석 박사가 사진자료조작을 지시한 것과 검찰의 발표가 일단 다르다. 검찰의 확대 과장하기 의혹이 있지만 일단, 검찰 발표가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자료조작과 줄기세포 바꿔치기 조작은 비교할 수 없다.
논문에서 사진자료는 지극히 보조적인 자료이며 허점이 드러날 경우 후에 보충하면 그만이다. 논문심사과정에서 사진은 잘 보지도 않는다. 중요한 것은 논문에 담겨있는 과학적 원리이다.
따라서 이번 논문조작파문의 가장 중대 범죄를 저지른 자는 검찰 발표에 의하더라도 김선종 연구원이다. 그러나 이인규차장 검사는 김선종 연구원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지나가는 말로 해버리고 오로지 큰 문제도 아닌 황박사의 자료조작 지시만을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발표하였다.
검찰 발표만 보면 모르는 사람들은 모두 이번 논문조작의 핵심 주범자를 황박사로 오인하게 딱 좋게 말했다.
셋째, 1번줄기세포의 진위가 황우석 박사의 특허를 사수하는데 결정적인 부분이다. 검찰은 분명이 각인검사를 하는 등 1번줄기세포가 처녀생식인지, 체세포복제배아줄기세포인지 밝히기 위해 노력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왜 발표에서 그 내용을 언급도 안했는지 의문이다. (처녀생식임이 확실하다면 분명히 밝혔을 것이다.)
그렇다면 검찰에서 조사한 내용을 성실하게 발표하여 황박사의 국제특허를 지킬 수 있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려고 해야 함에도 아예 발표에서 제외시켜버리고 이상하게 ‘1번 줄기세포는 애초부터 처녀생식 가능성을 지니고 있어 황박사는 후속연구를 시급하게 진행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식의 불리한 말만 중얼거렸다.
넷째, 김선종 연구원이 과연 단독으로 그런 엄청난 범행을 저지를 수 있는가. 미즈메디는 정기적으로 줄기세포를 검증하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줄기세포는 보존과정에서 돌연변이가 일어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김선종 연구원은 미국에 건너가 있었기 때문에 중간검사를 직접 조작할 수도 없었다. 누군가 도와주지 않는다면 이미 미즈메디에서 그것이 수정란줄기세포를 섞어심은 것이라는 점이 들통났어야 한다. 김선종 연구원의 이런 배후에 대한 검찰 조사 결과는 무엇인지 당연히 발표했어야 한다. 이런 의혹을 얼마나 많이 제시했는데 검찰은 일언반구도 없는가.
다섯째, 노성일 이사장과 문신용 교수의 조작된 논문조작 문제와 이사건과의 연관에 대해서는 아무런 조사 결과도 없다는 데에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난자매매와 관련해서 노성일 이사장이 자신의 돈으로 매매를 해서 황박사에게 주었다는 진술을 했었다. 물론 노성일이사장의 난자매매가 생명윤리법 위반 전이어서 처벌을 할 수 없다고 해도 검찰은 조사를 하고 그 결과를 반드시 발표했어야 한다.
문신용 교수는 민주노동당에서 이미 국가지원금 유용혐의가 있다고 지적된 자이다. 검찰은 그런데 아무런 발표도 하지 않았다. 세포응용사업단 소속 윤현수 교수가 5천만원 유용을 했다면 총 그 사업단의 단장이 문신용 교수도 반드시 조사를 했어야 정상이다.
여섯째, 윤현수 교수는 테라토마 검증의 책임자이다. 그가 논문조작에 깊이 관여하지 않을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료 조작혐의는 없이 연구비 유용으로만 기소되는지 의아하다.
일곱째, 황우석 박사의 자금세탁 방식이 비열하다고 하는데 구체적인 근거를 말하지 않고 있다. 연구비를 편취했다고 하는데 어떻게 편취해서 어디다 썼는지가 불분명하다.
아내에게 2천만원짜리 고급승용차를 사 주었다고 하는데 도대체 2천만원짜리가 고급인지 의문이다. 검찰에서도 황박사 개인돈과 연구비가 섞여 있다고 했다. 따라서 승용차를 꼭 공금으로 샀다고 볼 수도 없는 정황이다. 그걸 가지고 횡령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납득이 안 된다. 통장을 여러 개 가지고 있는 것은 어느 연구소나 만찬가지이다. 그걸 운운하는 것 자체가 오히려 의심스럽다.
여덟째, 황우석 박사와 김선종 연구원의 공모가 없었다는 부분에 대한 발표를 한마디로 흘리고 지나가버렸다. 사건의 핵심은 여기에 있다
공모가 없었다는 것은 황박사가 결백하다는 결정적 증거이다.
황우석 박사는 배반포를 만드는 일만 담당했고 그 배반포를 줄기세포로 배양하는 일은 김선종 연구원이 담당했다. 공모를 하지 않고는 황박사는 아무런 조작을 할 수가 없다.
그 실체를 국민들에게 알릴 수 있는 부분인데 발표에서 거의 무시해버렸다.
아홉째, 황우석 팀 연구원들의 월화수목금금금 일한 부분에 대해 검찰은 높이 평가했다. 그런 기풍은 황박사의 지도에 의해 나온 것으로 황박사와 분리해서 평가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그럼에도 검찰은 서울대 조사위의 기조대로 연구원들은 칭찬하고 황박사만 나쁜 사람으로 몰아가는 논조를 지키고 있다.
무슨 의도로 왜 이렇게 발표했는가. 과연 이것이 공정한 태도인가.
검찰 조사에서도 드러났듯이 황우석 박사는 적어도 김선종 연구원에게 바꿔치기를 지시하지 않았다. 김선종 연구원과 그 배후 세력에 의해 철처히 당했다는 것을 단적으로 알 수 있는 조사결과이다.
그 결과 하나만으로도 이번 사건의 최대 피해자는 황우석 박사이다.
황우석 박사의 체세포배아복제배반포 기술 하나만으로도 그는 이미 세계적인 영웅이다. 전세계 최고의 생명공학자들이 몇십년동안 매달려서 모조리 실패를 면치 못했던 그 배반포 기술을 황우석 박사는 서울대 문신용 교수의 제안으로 연구한지 1년여만에 단방에 성공시킨 사람이다.
지금 새튼이 강탈해가려고 하는 특허기술도 바로 이 배반포에 집중되어 있다.
지금 영국과 미국 등 체세포배아복제줄기세포 연구에 박차를 가해 황우석팀을 따라잡으려는 자들이 사용하고 있는 기술도 바로 황우석 박사의 배반포 기술이다.
그런 기술을 가지고 있는 세계적인 한국의 과학자를 검찰은 과연 공정하게 평가하고 그 성과를 살리려고 했는지 심각한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특히 황우석 교수의 기술이 미국에 의해 강탈당할 위기라는 주장과 증거들이 즐비한 조건에 그에 대한 발표가 전무하는 것은 기가막힐 일이다. 한국 검찰인지, 미국검찰인지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사진자료조작은 별것도 아닌데 중범죄인 것처럼 발표했고, 연구비 횡령은 뭘 횡령해서 어떻게 썼다는지를 구체적으로 말하지도 못하면서 횡령했다고 발표만 그저 방방 하고 있다.
이번 파문은 과학사건이다. 과학은 명백하게 검증된다.
이번 황박사 파문 검찰 조사는 실망스럽다. 검찰 스스로 자충수를 둔 것 같다. 국민적 저항이 심각할 것이며 황우석 박사 변호사팀도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검찰 조사의 문제점에 대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일단 추적60분만 나가도 검찰은 국민들로부터 ‘도대체 뭐했는지 모르겠다’는 비난으로 몸살을 앓게 될 것이 자명해 보인다.
검찰도 역사의 심판만은 면할 수 없다. 최종길교수 사건, 인혁당 사건 모두 다 지금 심판을 받고 있다.
검찰 위에 국민이 있고 진실이 있다. 그리고 과학은 실험으로 검증된다.
원문 출처 - http://www.jajuminbo.net/
|
|
|
|
* 이 글의 트랙백 주소 :: http://nfeel.co.kr/tt/trackback/660 [Copy] |
|
|
|
일반적으로 질풍노도의 시기란 사춘기 시절을 일컷는 경우가 많다. 이는 대체적으로 사춘기 시절을 겪는 다수의 청소년들이 반항적이며 심한 고뇌와 갈등을 겪는 경우가 많다보니 이를 빗대어서 생겨난 말이다. 물론 어원은(슈투름 운트 드랑 [Sturm und Drang]) 문학 작품에서 유례되었다.
허나 아직도 많은 성인 여자들이 위와 유사한 시기를 겪고 있으며, 그로 인해서 파생되는 주변 인물들과 환경의 변화들은 아직도 그들로 하여금 스스로 되돌아 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니가 먼데?' 나 '날 아직도 어린애 취급하는거야?' 식으로 자신을 진짜 성인과 동격화 시키면서 자신의 판단이 옳고 잘못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주변이 편견으로 바라본다는 시각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여자에게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25~28세 사이의 여자들에게서 많이 일어난다. 어찌보면 위험천만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살아온 세월의 흐름만큼 겪을만큼 겪어봤고 어느정도 사회생활도 해봤고 알만큼 알았으니 이제 스스로 성인이라고 자부하게되어 부모의 잔소리만큼이나 상사나 윗사람들에 말들이 귀에 거슬리게 되는 시기니 말이다.
저러한 여자들의 가장 큰 2가지 특성이 있다. 상황판단 능력 부족과 상황이해 능력 부족이다.
A라는 상황에 대한 문제가 발생하여 그 잘못에 대해서 깨달음을 알게되었을 때 A의 응용 상황인 B에도 그 깨달음을 적용할 수 있는 이해와 판단이 필요함에도 100% 동일한 A의 상황이 아닌 조금이라도 달라진 상황이 연출되면 다시 암흑속에 빠져버리게 된다.
이건 어찌보면 대체적으로 여자들이 논리적인 부분에서 약하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상황을 해석하고 과거에 일어났었던 상황들을 종합해 내어 대처하는 능력. 감성에 얽매여 동기와 결과만을 부각하려는 자세는 사회생활에서 타인을 무척 힘들게 만들어 버리는 독약인 것이다.
딱히 근본적인 해결책은 보이지 않는다. 이는 오래도록 습관화된 우리나라 여성들만의 패턴일 수도 있고 또한 이러한 문제점을 아무리 저 시기에 귀에 인이 박히도록 얘기를 한다해도 '무슨얘기하는거야? 나하고는 전혀 무관한 얘기를 들으라는거야?' 식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그저 <시간이 약이다>라는 성의없어 보이는 정답을 내보일 수 밖에 없다.
세상 살아가다보면 시간이 답인 경우가 너무 많다는게 가끔은 답답하게 한다.
|
|
|
|
* 이 글의 트랙백 주소 :: http://nfeel.co.kr/tt/trackback/658 [Copy] |
|
|
|
시간이 흐르면 관심도가 느슨해지기 마련이다.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 진실의 힘을 믿고 끝까지 조금이라도 더 나은 정보와 진실을 파헤치고 습득하려는 사람과 그저 자기 삶에만 충실하다가 빅이슈를 통해서 들려오는 소식만을 진실이라고 믿는 사람.
일간신문 헤드라인에 커다란 글자로 인쇄된 타이틀을 진실이라고 믿는 사람들.
9시 뉴스의 앵커가 힘을 주어 토로하는 말들이 진실이라고 믿는 사람들.
가끔은 답답하다.
MATRIX라는 영화가 떠오른다. 가려지고 또 가려져서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도 없고 의심조차도 하기 힘든 그런 세상이 사실은 생각보다 만들기 어렵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것이 말이다.
어쩌면 내가 살고있는 이 세상이 그런 영화 속 세상과 흡사한건 아닌가 말이다.
눈물이 흐른다..... 눈물이...
언론사상 몇명의 언론인이 세상을 바꿔 놓았지.................
워터게이트의 우드워드기자와 워싱턴 포스트지의 사장. 닉슨 하야.
월남전에서 네이팜탄이 터지는 마을을 배경으로 대로에서 어린 소녀가 벌거벗고 우는사진을 찍은 기자. 월남전 종식.
광주사태를 필림에 담아 전세계에 방영한 독일기자.
또 하나의 역사가 이 시간에도 계속해서 쓰여지고 있음을 간과하지 말자!
|
|
|
|
* 이 글의 트랙백 주소 :: http://nfeel.co.kr/tt/trackback/657 [Copy] |
|
|
|
"잘난척 좀 하지말자" 스스로 되새겨보고 곰곰히 생각도 해보고 반성도 해보지만 사실 살아가다보면 꼭 필요한 요소가 이 잘난척이다. 좋은말로 하자면 자기PR쯤 되겠다. 물론 자기PR이라는 용어를 달 때는 무언가 필요에 의해서 행해지는 일련의 자기 알리기와 홍보일 것이다. 하지만 언제나 사람이 모이고 그 사람들 속에서 자신의 당위성과 존재를 각인하고자 한다면 이 자기PR은 그 정도를 넘어서서 잘난척의 경지에 오르게 된다.
자기PR의 정도를 지키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어떠한 일을 저지르고 나서야 타인에 의해서 느껴지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좀이 쑤시게 되는 것이다. 적정선을 지키려고하면 자기안의 자아가 꿈틀대기 시작한다.
'내말이 정답이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이해를 못하고 있는거다.' 라는 전제를 바탕으로 쏟아내기 시작한다.
가장 객관적인척 갖은 위장전술을 써가며 자신을 객관화의 주체로서 다수를 끌어 들인다. 이 다수에 속하지 못하게 되면 아무리 정상적인 객관적 의견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매장 당하기 쉽상이다. 아니 어쩌면 표현조차 하기를 꺼려하기 마련이다.
우리는 그러한 경우를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 블로그를 예를 들어보자. 한 개인의 블로그가 소위 말하는 메이저 블로그로서의 위치가 되게되면 그에게는 수많은 다수가 추종세력으로 빌붙게 된다. 이러한 내용은 2004년에 적어둔 <소중한 인연을 셀 수 있습니까?>를 링크해 둔다. 그러나 그들이 쏟아내는 수많은 내용들이 모두 올바르고 바른 논리를 가지고 있다고는 할 수 없지만, 대체로 댓글은 별 생각없는 동조들이 뒤를 이어간다.
사람은 변한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에도 독재 권력을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그를 추앙하고 존경하고 지지했다 하더라도 사람은 언제 어떻게 변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우리에게는 시간을 두고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게 되는 것이다.
가능한 말을 아끼자! 지금 내릴 수 있는 판단도 한번 더 생각해보는 기회를 갖자! 누군가에 대한 지지가 편파적이진 않는지 되새겨보자! 결정을 바꿀 수 있는 용기를 갖자!
-------------------------------------------------------------
미켈란젤로의 한 사례를 들어보겠다.
미켈란젤로가 그의 가장 위대한 작품인 시스티나 성당의 600평방미터 넓이의 천장벽화를 그릴 때의 일이다.
한번은 그가 받침대 위에 올라가 누워서 천장 구석에 인물 하나를 조심스럽게 그려넣고 있었다.
그 때 친구가 다가와 이렇게 물었다.
"여보게, 그렇게 구석진 곳에 잘 보이지도 않는 인물 하나를 그려 넣으려 그 고생을 한단 말인가? 그게 완벽하게 그려졌는지 그렇지 않은지 누가 안단 말인가?"
미켈란젤로가 말했다. "내가 알지."
이런 내면적 동기부여를 '미켈란젤로의 동기'라고 한다.
우리는 이러한 내면적 자아에 대한 동기부여 대신 외면적 타인에 대한 판단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지는 않은가?
나는 아닐거야가 아니라, 그래 나도 포함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자신을 찾기를 바란다. 나부터 말이다.
|
|
|
|
* 이 글의 트랙백 주소 :: http://nfeel.co.kr/tt/trackback/656 [Copy] |
|
|
|
내가 생각하는 소중함과 바꿔야 하는 것들이 있기 때문에 잃어버릴 수 밖에 없는 것들이 생겨나게 된다. 난 완벽한 사람이 못되기 때문에 내 주변에 수많은 것들에 대해서 모든 것들을 챙길 수가 없다. 나의 가족과 구성원이 늘어날수록 내 생각에 틈들은 서서히 줄어들게 된다. 게다가 사회생활에서 어쩔 수 없이 만나게 되고 엮여서 해야 할 일들이 있는 한 난 구 구성원 속에서 그들에게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럼으로 인해서 내가 놓치게 되는 것들에 대해서 한참에 시간이 지난 후에서야 문뜩 '그들은 어디갔지?' 라는 후회와 한탄의 한숨을 내쉬게 된다.
오늘이 그날이다. 약 6개월간을 쉼없이 달려왔다. 내가 속한 현재의 모든 것들에 최선을 다해왔고 가족에 대해서도 부족함이 없어야 했고 회사일에서도 리더로서의 내 역할을 수행함에 하나의 소홀함도 용납할 수 없기에 더더욱 모든 신경을 쏟아 부었던 것 같다.
이렇게 내가 얻은 것은 분명하게 있다. 조금은 비틀대면서 걸어왔지만 가족을 유지하기 위한 내 노력은 다분히 회사일과의 균형을 가져보려고 꽤나 노력한 만큼에 소득은 얻은 것 같다. 일에 있어서도 충분히 내가 가진 능력을 보여주려 애를 썼고 그만큼의 가치를 인정받기까지 거침없이 달려온 것도 확실하다.
하지만, 오늘 난 되돌아본다. 지난 6개월간 내가 얻은 것과 내가 잃어버린 것들에 대해서...
'어쩔 수 없지 않았는가? 무언가에 열중하면 다른 하나에 소홀할 수 밖에 없는 것.. 그게 현실일거야' 이렇게 스스로에게 위안의 말을 수없이 던져보지만 메아리 치듯 내게 돌아오는 것들은 공허한 허탈함이다.
내가 어리석은 것일까? 현실이 나를 가둔 것일까? 여전히 난 부족함을 메꾸지 못한 채 방황한다.
|
|
|
|
* 이 글의 트랙백 주소 :: http://nfeel.co.kr/tt/trackback/655 [Copy] |
|
|
|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누군가를 설득해야 하는 상황을 자주 접하게 된다. 설득이라 함은 자신의 주장이 옳다고 규정지을 때 이러한 주장을 상대방에게 이해시키기 위한 일련의 행동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이런 대화에서 논쟁을 피해가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다. 어느 누군가가 스스로 물러서거나 양보하지 않는 한은 양날의 칼을 쥔 것처럼 자신의 논리는 반드시 부분적 오류를 가지고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여기 한참 논쟁에 빠져있는 A 와 B가 있다. 두어 시간이 지나도록 결론이 날줄은 모른다. A 와 B 둘의 주장은 매우 상반된 논제를 가진 채 서로가 옳음만을 이야기 한다.
"그래 당신말도 맞는데.. 그런데 말이야..." 이런 식이다.
이 때 C가 등장한다. C는 명확하게 A 에 말이 옳음을 C의 논리에 근거하여 손을 들어준다.
논쟁은 끝났다. A가 옳은 것일까?
한참 후에 D가 나타나 그동안의 상황을 들어보고는 C의 결론을 번복하며 B의 손을 들어주었다.
B가 옳은 것일까?
여기서 우린 C와 D가 논쟁을 결론 지을 수 있는 설득력을 가졌음을 알 수 있지만 논리적이었는지 비논리적이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어떤 주장을 합리화 시키기 위해서는 정확한 명제와 그에 따른 귀납적 결론에 도달을 수 있는 기승전결이 명확해야만 한다. 명제는 있지만 결론을 짓지 못한다면 그 누구도 설득시킬 수 없는 물음표만 매사에 연신 찍어될게 뻔하다. 막연한 결론만 짓고 논쟁을 끝맺기만 한다면 늘 뒤끝이 찝찝하게 느껴질 것이다.
난 오늘도 물음표를 연신 찍어대며 뒤끝이 찝찝함을 곱씹고 있다.
당신(A)이 가진 한계는 또 다른 당신(B)에게도 있음을 외면하지 말 것을 당신(C)과 당신(D)에게 말하고 싶다.
|
|
|
|
* 이 글의 트랙백 주소 :: http://nfeel.co.kr/tt/trackback/653 [Copy] |
|
|
|
|
Tracked from .Net Reference 2006/03/05 09:18 DELETE
제목: 논리적 설득력의 한계..
NFELL 님의 블로그에서 발췌한글이다.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누군가를 설득해야 하는 상황을 자주 접하게 된다. 설득이라 함은 자신의 주장이 옳다고 규정지을 때 이러한 주장을 상대방에게 이해
|
|
|
|
|
|
|
|
|
|
|
 |
|